컴맹이 컴공에 입학한 이야기 — 98학번 올드 직장인의 대학 시절
전자공학과를 지망했다가 접수 현장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바꿨고,
컴퓨터를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컴맹으로 컴공에 입학했습니다.
그게 지금 20년 인프라 아키텍트 커리어의 시작이었어요.
목차
- 98학번, IMF 학번
- 컴맹의 컴공 입학
- 1학년 — 컴퓨터 도난 사건
- 2학년 — PHP와 Linux를 독학하다
- 병역특례 — 배달의 민족 원조 서비스
- 서울 벤처 4년
- 2004년 복학
- 졸업 그리고 대기업 입사
- 마치며
98학번, IMF 학번
1998년 입학했습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였어요.
집이 넉넉하지 않았던 저는 등록금이 저렴한 지방 국립대를 선택했습니다.
원래 지망은 전자공학과였어요.
수능을 좀 망쳤고, 친구들은 당연히 제가 재수할 줄 알았겠죠.
근데 저는 현장 접수장에서 원서를 바꿨습니다.
전자공학 지망하던 친구들이,
"전자공학은 경쟁률이 너무 높다. 컴퓨터공학으로 가서 내 경쟁률 낮춰줘라~."
그 즉흥적인 결정이 지금의 커리어를 만들었어요.
컴맹의 컴공 입학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했는데, 저는 컴퓨터를 한 번도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었어요.
지금 표현으로 하면 완전한 컴맹이었습니다.
주변 친구들 중에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코딩을 해온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 친구들이 지금도 그 바닥에서 나름 잘 나가고 있으니, 당시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시죠.
저는 그 친구들을 따라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어요.
다행히 그 친구들이 잘 챙겨줬고, 나중에 서울 자취 생활도 같이 하게 됩니다.
수능 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샀어요.
그때는 데스크탑 하나가 150만 원 정도 했습니다.
꽤 큰돈이었죠.
1학년 — 컴퓨터 도난 사건
1학년 여름방학.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컴퓨터를 도난 당했습니다.
주유소 알바로 힘들게 산 첫 컴퓨터였는데요.
눈물이 났어요. 진짜로.
그런데 이게 오히려 전환점이 됐습니다.
동아리 선배가 교내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줬어요.
교수님 연구실 보조였는데, 거기서 컴퓨터를 쓸 수 있었거든요.
컴퓨터를 도난 당했으니 거기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오히려 더 많이 배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2학년 — PHP와 Linux를 독학하다
아르바이트가 교내 전산실 업무 보조로 바뀌었어요.
교내 홈페이지 관리 보조였는데, 당시 웹개발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웹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고,
Linux(알짜리눅스)와 PHP를 독학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이게 인프라와 개발을 동시에 공부한 셈이었어요.
그 경험이 나중에 TA로 일하는 데 큰 바탕이 됩니다.
병역특례 — 배달의 민족 원조 서비스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려던 참에, 벤처 붐이 일어났어요.
대학 졸업한 선배(당시 삼성전자 소속)가 같이 창업하자고 했습니다.
몇 달간 아이템을 발굴하고 창업을 준비했는데...
선배가 포기했습니다. 선배가 투자자 역할이었거든요.
미안했던 선배가 병역특례 제도를 알려줬어요.
고향 근처 벤처기업을 알아보고, 친구와 함께 들어갔습니다.
그 회사에서 만든 서비스가 지금으로 치면 배달의 민족과 비슷한 컨셉이었어요.
웹사이트에서 집 근처 중국집을 찾아 주문하면 가게로 전달해주는 서비스였는데,
지금처럼 네이버 지도 같은 게 없던 시절이라 GIS/MAP 데이터를 직접 사서 다 만들어야 했어요.
그리고, 집집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주문을 받으면 가게로 FAX로 전송했습니다.
몇 달을 고생해서 데모를 완성하고 벤처 투자도 받았어요.
그런데...
위의 임원들이 투자금을 받고 배쨌습니다.
순진하게 열심히 만들었더니 그런 일을 당하니 허탈했죠.
결국 그 회사를 관두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서울 벤처 4년
서울에서 벤처회사 면접을 봐서 개발자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약 4년간 서울 생활을 했습니다.
- 웹개발
- Payment Gateway(PG) 개발
- 도서관 시스템 개발
다양한 개발을 했는데, 당시엔 개발자가 서버도 만지고 다 해야 하는 시절이었어요.
그게 나중에 인프라 아키텍트로 일하는 데 든든한 베이스가 됩니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 코딩 하던 친구들도 저를 따라 병역특례를 했고,
서울에서 같이 자취하며 지냈어요.
그 친구들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나는 개발로 밥 먹기 힘들겠구나."
컴맹으로 시작해서 많이 따라왔지만,
어릴 때부터 코딩한 친구들과 개발 실력 경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그 생각이 나중에 진로 선택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편으로 타지 생활 4년이 쌓이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갔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과 함께 불면증에 시달리고, 우울증 직전까지 갔습니다.
복학할 때가 됐다는 게 다행이었어요.
복학
3학년으로 복학했습니다.
실제 사회에서 개발을 해보고 돌아오니 학교 수업이 너무 쉬웠어요.
Linux 수업에서는 교수님이랑 논쟁도 하고 노가리도 까면서 재밌게 들었고,
소프트웨어공학은 이론은 몰라도 실무 경험이 있으니 너무 재미있었어요.
소프트웨어공학 교수님이 매번 발표를 빡세게 시키는 분이라 후배들이 힘들어했는데,
저는 교수님이랑 맞담배 피우며 후배들 고민 해결해주는 포지션이 됐습니다 😄
소프트웨어공학 전공이었는데, 복학하고 나니 오히려 펌웨어 레벨의 전통적인 컴퓨터공학에 더 관심이 생겨서,
컴퓨터공학 전공 수업도 많이 들었어요.
마이크로프로세서, 임베디드, 컴퓨터구조, 데이터통신 — 이런 과목들이 재미있었습니다.
(그 과목들이 지금 자격증 공부에 다시 나올 줄은 몰랐지만요 😄)
4학년 때는 친구랑 갑자기 좋은 대학원이 가고 싶어져서 학점을 올리고 준비했는데,
둘 다 떨어졌습니다.
졸업 그리고 대기업 입사
대학원에 떨어진 후 친구가 먼저 대기업으로 갔어요.
저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대기업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생각보다 괜찮다며 꼬시더라고요.
하반기에 지원했습니다.
지원할 때 선택지가 두 가지였어요.
- 개발 직군
- 기반(인프라) 직군
서울 자취 시절 코딩 잘하는 친구들을 옆에서 보며 내린 결론이 있었죠.
"나는 인프라로 가자."
그렇게 2006년 6월,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처음 배치받은 팀이 TA팀이었고, 자연스럽게 잘 적응해서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마치며
컴맹으로 시작해서 컴공에 입학하고,
컴퓨터 도난 당하고, 창업 시도했다가 투자금 먹튀 당하고,
불면증으로 힘들었던 서울 벤처 생활을 거쳐 복학하고,
대학원에 떨어지고 나서야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도 계획대로 된 게 없어요.
전자공학과를 지망했다가 접수 현장에서 컴퓨터공학으로 바꾼 것처럼,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에요.
자격증도 커리어도, 계획보다 경험이 먼저였습니다.
커리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궁금한 점은 댓글로 남겨주세요!
관련 포스팅
2026.05.22 - [자격증 정복] - 올드 직장인의 2026년 자격증 올킬 도전기 (feat. 아들, 팀원들과 함께)(update: 2026.05.29)
올드 직장인의 2026년 자격증 올킬 도전기 (feat. 아들, 팀원들과 함께)(update: 2026.05.29)
올드 직장인의 2026년 자격증 올킬 도전기 (feat. 아들, 팀원들과 함께)20년 경력 인프라 아키텍트가 2026년에 자격증 7개에 도전하는 무모한(?) 계획입니다.합격할 때마다 업데이트 예정 🔄왜 이렇
tech.seanney.pe.kr
'자격증 정복'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년 하반기 자격증 스터디 플랜 — 아들과 함께 기능사 3종목 도전 (0) | 2026.06.05 |
|---|---|
| 대기업 TA에서 보안까지 — 20년 커리어 이야기 (2) | 2026.06.04 |
| 정보보안 자격증 로드맵 — 인프라 아키텍트가 CISO에게 물어봤습니다 (0) | 2026.06.02 |
| 인프라 아키텍트에서 대기업 계열사 CISO까지 — 위기가 기회가 된 이야기 (0) | 2026.06.02 |
| 공부한 게 아까워서 또 접수하는 올드 직장인의 자격증 중독기 (2) | 2026.06.01 |